최근 SNS를 중심으로 성 소수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Minority)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인적 다양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오늘날,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부상으로 다시 조명 받고 있는 다양성과 포용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최근 경제 및 산업 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조직 내 인적 다양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다양한 유형의 경제활동 인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59.1%로 2019년보다 0.9%포인트 하락하긴 했으나 이는 코로나19의 영향이며 2011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비정규직 비율은 36.3%로 2019년 대비 0.1%포인트 감소했으나 이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분석되며 2014년 32.2% 이후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게다가 이 중 약 25%가 60세 이상 고령자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총 취업자 수도 2012년 79만 1000명에서 지난해 84만 800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성 소수자인 LGBT 인력에 대한 이슈도 큽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성 소수자임을 드러낸 10명 중 4명이 성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 생활에서 임금, 승진, 고용 등에서 차별을 겪었습니다. 단기간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도 이러한 성 소수자 관련 이슈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신규 채용으로 입사하는 인력은 이제 MZ세대가 되었습니다. 올해 4월 말 기준 밀레니얼 세대 비중은 22%, Z세대 비중은 14%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36%를 차지합니다. 베이비붐 세대 15%, X세대 26%를 합한 것과 비슷합니다. MZ세대는 주요 기업에서도 구성원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점차 증가할 것입니다.
다양성, 포용 그리고 공평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인력이 증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인력과 문화 측면에서 다양성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력 측면에서는 수시 및 경력 등 다양한 채용 방식을 도입하고 인력 현지화, 역(逆)주재원 등을 통한 글로벌 인력 유연성을 확보해 내부 인력의 다양성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이 조직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 시간제, 모바일 오피스 등 스마트 워크 환경을 구축하고 있으며 다단계 직급을 축소하고 호칭을 통일하는 등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현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이란 일반적으로 ‘한 집단 내에서 나이, 종교, 성, 인종과 같은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의 차이 또는 다름이 넓게 분포한 상태’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 다양성위원회는 다양성을 ‘성별, 국적, 신체적 조건, 경제적 조건, 사회적 조건, 신념, 사상, 가치관, 행동 양식, 종교, 문화 등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치관’으로 정의하며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는 개방, 포용, 공평 원리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방이란 ‘조직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이질적인 집단 간에 활발한 교류가 발생하는 상태’, 포용이란 ‘구성원 모두가 집단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 공평이란 ‘구성원의 특성을 배려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공정한 정책, 제도 및 절차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로 하단의 그림과 같이 공평(Equity)과 평등(Equality)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다양성 관리 3단계 모델
하버드대 교수인 로빈 일리와 모어하우스대 총장인 데이비드 토마스의 이론에 의하면 다양성 관리는 목적과 기업·사회의 성숙도에 따라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단계는법적제재를피하기위한목적으로이단계에서는주로고용평등법규준수나사내차별요소 철폐와 관련된 이슈에 초점을 둡니다. 법적 차별 이슈는 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기본 요건으로 관련 법규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미국에서 나이 차별 관련 현지 고용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40세 이상 직원을 해고했다가 피소를 당해 막대한 소송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반면 IBM은 해외 법인별로 다양성 관련 법규 대응 및 관리를 담당하는 전담팀을 운영해 차별 관련 실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다양성 관리 우수 기업’ 이미지 구축에 성공해 해외 시장 확대에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법적 차별 이슈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경우 법무팀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기업들은 ‘최고다양성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 : CDO)’라는 다양성 관리 전문 임원을 중심으로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 이슈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2단계는 다양성의 차이를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 목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주로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구현하거나 소수자가 가진 장점을 사업에 활용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다양성을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경우 다양한 시장과 환경 변화에 대응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토요타는 2009년 렉서스 사고로 인한 사상 최악의 리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사진이 리콜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으로만 구성돼 있어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사진 29명 모두가 토요타 내에서 승진한 일본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사진의 다양성 결여로 정형적이지 않은 문제에 대한 민첩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미국의 디자인회사인 아이디오(IDEO)는 인류학자, 엔지니어, 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인력의 다양성에서 발휘된 창의성을 발판으로 세계 최고의 디자인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러한 일하는 방식으로 최고 디자인상을 최다 수상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디자인회사가 되었습니다.
다양성의 비즈니스 차원 활용이 미흡할 경우에는 여성, 경력직, MZ세대 등 소수자들이 비즈니스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부여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소수자에 대한 채용 타깃을 운영해 일정 비율 이상의 인력을 채용하거나 여성 관리자 확대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3단계는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목적으로 이 단계에서 기업은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거나 상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다양성 관리는 이제 더 이상 기업 내부의 이슈가 아닙니다. 현재 ESG 개념이 부상하면서 다양성도 함께 조명되고 있습니다. 즉 기업 차원의 이슈에서 사회적 차원의 이슈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파파존스피자는 직원의 다양성 인식 부족으로 인한 인종차별 행동으로 브랜드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매장의 한 직원이 동양인이 주문한 영수증 고객명에 ‘찢어진 눈의 여성(Lady Chinky Eyes)’이라는 동양인 비하 문구를 적은 것이 드러나면서 미국 교민 사회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 이미지 손상을 입었습니다.
반면 구글은 시각 장애인인 라만 박사를 채용해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웹 정보를 오디오로 전환해 주거나 점자와 자막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검색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애인들도 자유롭게 웹을 검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긍정적인 사회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책임 수행을 위해서는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노력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설정하고 소수자 권익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을 비전으로 사회적 책임과 함께 지속가능경영을 추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문화다
갤럽이나 다른 학자들의 다양성 교육과 관련된 연구에 의하면 다양성 관련 교육이나 훈련의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양성 교육을 의무적이라고 느끼거나 존경과 배려, 리더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구축된 문화의 일부가 아닌 경우 종종 실패합니다.
이처럼 다양성과 관련된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관리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은 개인의 편견을 근절하기보다 오히려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인력 구성에서만 다양하다고 해서 기업이 다양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인력들이 서로 조화롭게 생활하면서 조직 성과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데 그 바탕이 바로 포용의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가 없는 다양한 인력들만의 구성은 오합지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포용이란 다른 말로 ‘다름의 인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을 때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며 이러한 갈등을 잘 조정하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다양성 관리 역할입니다.
포용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은 첫째, 직원들이 자기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각자의 약점을 서로 알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환경을 만들어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특권을 바탕으로 안전한 자기만의 영역에서 침묵하는 대신 자신의 약점을 먼저 드러냄으로써 어떠한 이야기라도 솔직하게 대화하겠다는 의지와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둘째, 조직은 차별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많은 기업들이 친목 활동 그룹, 멘토링 프로그램, 일·가정 조율 정책, 무의식적 편견 방지 훈련 프로그램 등에 투자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대체로 실패했습니다. 리더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민족중심주의, 계급주의 같은 억압과 특권의 시스템이 현재 사회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배우고 회사의 조직문화가 이러한 변화에 상응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직원들의 능력이나 문화 적합성과 관련해서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회사의 조직문화가 시대 변화와 역행하는 결정들이 많고 차별을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셋째, 조직은 다양한 스타일과 의견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의 규범 또는 표준이 어떤 특정한 행동 양식과 의견을 지양하게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하게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독려하는 문화에서는 강한 어조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 조직의 표준에 순응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 본연의 스타일대로 해야 하는지 고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고집해서 승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자신의 본모습을 숨겨 정체성의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화에 대해 선입견이 생기거나 이 조직에 속하기 위해서는 본모습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일과 조직에 대한 몰입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회사는 선입견에 영향을 덜 받고 인종 등의 요소가 아닌 업무 역량에 기반한 피드백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관리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조직은 문화적 차이를 학습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회사에 긍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개인을 그 자체로 인정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것 자체가 미래의 혁신과 성장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김혜령 작가의 책 ‘불안이라는 위안’ 속에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건 서로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와 나의 다름이 만들어 내는 조화 때문일 것이다. 그 조화 안에서 더 나은 나와, 더 나은 당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다름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사랑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조직도 만들어 냅니다.
조성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sizif@posri.re.kr